Presentation

무지개신학교

교회라는 공간과 예배라는 의식에서 ‘거리두기’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고백되는 교회 내에서 그동안 어떻게 작동되고 있었을까요? 교회와 예배는 신이 창조한 모든 존재가 접근할 수 있어야하는 공간이고, 시간이지만, 그동안 교회는 이 문제점에 대해 교회 내에서 정상-비정상을 격리하는 방식으로 해결을 도모했습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지금의 상황이 지나가고 나면,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외면 받을 것이고, 그동안 잠시 덮어둘 수 밖에 없었던 교회 출석과 예배 참여의 교리는 다시 더 강력한 수단들로 수호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가상세계에서 교회를 짓고 예배한다는 것은 빼앗긴, 몸과 이를 통한 연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려는 시도입니다. 또한 오프라인의 대용으로써가 아닌, 온라인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예배를 통해 서로의 연결을 도모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합니다.

 이 작업은 철저히 기독교-청년의 관점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를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자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예배라는 의식과 교회라는 공간에 대한 단상으로부터 시작하며, 개신교 신학계에 발표된 예배에 관련한 글을 살펴보고, 오늘날 코로나 상황에서 이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이 작업을 시도하는 것의 필요성을 찾아보려 한다.

서양의 기독교는 사상적으로 크게 3가지의 흐름으로 나눠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개신교,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개념-로마 가톨릭, 그리고 신플라톤주의-신비주의이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등)를 아우르는 표현인 기독교에는 위에서 나열한 사상적 구분을 초월하여 공유하는 근본적인 전통과 성스러운 글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개념이 바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는 기독교 성서에 기록된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전한 말과 바울의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에서 발견된다. 개신교는 다른 교파보다 이 교리를 넓게 해석하는데,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 연결되어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몸’은 그것이 처음 생겨났을 때와 비교하여 보면, 피안으로 저만치 떠밀린 개념이 되었다.

물론, 그동안 예배와 세례에 대하여 사회적, 계급적, 경제적 신분으로 인한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해석이나, 차안에서 피안을 경험한다는 등의 해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원론적인 이야기였을 뿐, 지금 나를 이루는 ‘몸’과 그리스도의 ‘몸’은 이분법적 구분으로 나뉘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교회라는 공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배 의식 중 몸 자체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충분하지 않았다. 몸은 무엇인가? 그 공간과 예식은 어떤 몸에 열린 곳이었는가? 최근 예배에 관한 담론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몸은 보이지 않고 감춰져야 하는 것, 몸은 예배의 의미체계를 수행하는 도구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후자에 대해서는 예배의 의미체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여러 갈래의 주장들이 있었는데, 오늘날 한국 교계의 주류를 이루는 인식은 다음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은 2020년 4월에 발표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신학교 교수의 글이다.

예배는 일차적으로 몸의 활동이다. … '하나님 앞'으로 오는 몸의 행위는 그것이 반복됨으로써 참가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그리고 그분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를 만나주시는 분'으로 학습하게 한다. …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하느님께 기도하고 찬양한다는 것은 … 부모를 따라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그들 안에 하느님께 겸손과 복종이라는 의미체계 형성이 이루어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몸 그 자체는 신에 대한 겸손과 복종이라는 예배의 의미체계를 익히는 도구이다.” 이 문장으로 한국 개신교를 들여다보면, 교회가 어떻게 신자들을 권위 앞에서 복종적이고 무기력한, 저항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예배에 관한 이야기 중 갑작스레 등장한 ‘부모와 자녀’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어린아이, 장애인, 퀴어 그리고 외국인의 몸, 소위 ‘정상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몸들은 그 자체로 속박된 채 그 자리에 있거나, 금방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청년의 몸은 침탈당하고 착취당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을 ‘몸’으로서 연결했던 교회의 기능은 이제 정상성의 자격을 가진 이들만의 결속을 유지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교회에서 ‘몸’을 구성해온 가운데,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우리는 코로나 상황에서 드러나야 하지만 논의되지 않는 ‘몸’과 끊어진 연결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지금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모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몸을 빼앗고 서로가 연결되는 것을 저해시킨 공간과 시간이었던 교회와 예배로부터 떨어질 수 있고, 자기 객관화를 시도하며 다른 것을 탐구해볼 수 있는 ‘합법적인’ 시간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그 탐구는 갈피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시국 이후를 말하는 책임 있는 논의가 부재한 상황이다. 또한 지금의 예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틀과 내용은 오프라인 때와 달라진 점이 없다. 오프라인에서 취할 수 있었던 (그들만의) 긴밀성, 접촉성, 직접성, 동시성 등의 이점은 상실하였지만, 온라인으로 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성찰과 탐구는 없다. 교회와 예배에서 몸은 부재한 채 이미 일방적 소통체계였던 구조 안에서, 그저 얼굴만이 이모티콘처럼 존재할 뿐이다.

 정리하자면, 교회와 예배는 모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이었고, 시간이었지만, 정상성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접근할 수 없었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그동안 그 문제점은 교회 내에서 정상-비정상의 격리를 통해 해결되었다. 그리고 예배와 교회라는 시공간에 물리적 참여를 할 수 없게 된(적어도 선택할 수 있게 된) 지금에서야 아이러니하게도 해결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찰하며 드는 생각은, 이 상황이 무탈하게 지나가고 나면, 그동안 잠시 덮어둘 수밖에 없었던 교회 출석과 예배 참여의 교리는 다시 더 강력한 수단들로 수호될 것이 자명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점에서, 온라인상에서 가상 교회를 짓고 그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은 빼앗긴 몸과 이를 통한 연결 대한 논의를 시작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최근에 종교라는 단어 대신 영성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는 추세가 종교인-비종교인의 구분 또한 희미해지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본다면, 비종교인의 접근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해볼 수 있겠다.

오늘날 한국개신교회는 다양한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을 추구하기보단 차이점을 부각하고, 분열한다. 신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지만, 그 요구를 하는 이는 신에게 가장 복종하지 않는다. 이 작업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신성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고백과도 같다. “하느님은 부정의 부정이다(God is the denial of denial).” 하느님은 함께 사는 삶을 부정하는 것을 부정한다. 하느님은 노동을 부정하는 것을 부정한다. 하느님은 다양한 몸을 부정하는 것을 부정한다. 하느님은 다양한 성적지향을 부정하는 것을 부정한다. 하느님은 정의의 부정을 부정한다. 하느님은 평화의 부정을 부정한다. 이 부정의 부정은 우리를 연결하고 연대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 강하게 한다.







건물소개

마인크래프트 속 교회는 생명을 상징하는 건물로 건축되었다. 벽면을 이루고 있는 [얼음]과 [물]로 만든 십자가는 ‘평화를 품고 흘러가는 생명’이고, 교회 내부를 밝게 하는 [불]은 ‘따스함으로 타오르는 생명’이다. 교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꽃]은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생명’이며, 교회의 기반이 되는 [돌]은 ‘모두가 다르게 생긴 돌처럼 모든 게 특별한 생명’이다. 끝으로 교회를 세운 땅, 곧 [흙]은 ‘모든 것을 품는 생명’이다. 교회를 이루고 있는 다섯가지 [물] [불] [꽃] [돌] [흙]은 생명이며 교회는 생명을 품고 있다. 

교회 내부는 1층-텃밭, 2층-예배당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예배는 생명 위에서, 생명과 함께 드려진다. 2층 예배당은 권력을 상징하는 높은 단상을 없애고 빨,주,노,초,파,보 다양성의 한 가운데서 모두 평등하게 드리게 된다. 예배당 정면의 위치한 물로 만든 십자가는 예배 후 삶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축복의 십자가이며, 그들을 통해 모든 이웃에게 생명이 흘러가는 것을 상징한다.


〈무지개신학교〉는 기독교 신앙을 배경으로 모인 다양한 학생들의 학습공동체입니다. 그 시작은 개신교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부당하게 징계를 받고 목사고시에 불합격되며 더는 교계 내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된 이들 그리고 이를 목격한 자들로부터 시작해서,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교회와 신학계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다양한 이들과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시작한 모임입니다. 앞서 언급한 부분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더 나아가 그동안 개신교 교단과 교단 신학계에서 터부시되던 주제들, 그리고 사회 공론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슈들에 기독교인으로서 응답하기 위한 신학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페미니즘’, ‘생태’ 세 가지 주제를 큰 줄기로 꾸준히 공부하고, 강의를 만들고, 젊은 연구자들, 활동가들이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장이자, 교우들과 시민들이 교계 내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강의와 글로 접할 수 있는 장을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