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ation

남산강학원

〈팬데믹 시대, 함께 산다는 것〉

2020년 12월 중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열 명의 청년들과 ‘코로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 해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통과해 갈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질문이 풀려나가는 방향과 강도는 각기 다르겠지만요. 저희는 저희의 공부와 공동체 생활 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팬데믹 시대, 함께 산다는 것


코로나 시대에도 저희 공동체는 계속 함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읽고 쓰고 지지고 볶고. 이런 저희의 공부가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코로나를 겪고 있습니다. 저희의 방식으로요. 남산강학원(이하 강학원)에는 나이와 거주지, 직업 등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모입니다. 그중 저는 강학원 근처에 거주하며 숙식을 같이하고 매일 함께 공부방 생활을 하는 청년 친구들과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가장 강학원‘에서’ 코로나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있었는지

가장 먼저 많이 나온 이야기는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학원은 서울 중구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해있습니다. 저희 청년들이 각각 거주하고 있는 곳은 최대 도보 15분 거리이고요. 강학원에서 상근하는 청년들만 스무 명 정도입니다. 강학원 선생님들이 저희보다는 약간 먼 곳에서 종종 오가시고,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여러 곳에서 학인 선생님들이 오시고, 그 외에도 택배기사분, 생수배달기사분, 건물 청소부분들이 들르십니다.

저희 청년들은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께 ‘관계’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번 시국은 그런 청년들에게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공동체’ 전체를 몸으로 감각하게 된 때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문빈: 저는 식당 아르바이트(이하 알바)를 하고 있는데, 불안합니다. 주방 직원이 네 명, 홀 직원이 네 명, 사장님 한 분까지 직원이 아홉 명에, 드나드는 사람이 점심에만 100명 120명 되는데, 항상 코로나에 걸릴까봐 무서워. 그래서 나름대로의 방역을 하고 있긴 해요. 비말 감염이 되잖아. 그래서 주머니에 알콜 소독제를 넣어놔. 그릇을 정리하고, 치우고 바로 소독하는 거지. 사장님한테 ‘환기하면 안 돼요?’ 이런 거 물어본단 말이야. 창문이 없어서 문이라도 ‘코로나인데 열어놓으면 좋지 않을까요’ 하는데 안 먹혀(웃음) 히터 틀고 있으니까.

코로나가 연결을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 거 같아요. 내가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 같아, 좀 더. 나 한 사람이지만 걸린다고 생각하면 내가 활동 하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엄청 걱정이 되고. 청년들은 또 모르겠는데 선생님들까지… 극단적으로 상상이 되니까 행동 하나하나가 좀 무섭고. 내 욕심에서 어딜 갔다가 코로나에 걸리면 정말 스스로 죄책감 같은 게 많이 들겠다, 이런 상상이 되는 거야. 그래서 행동하는 데에 좀 더 무겁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


수정: 내가 걸려서 여기(강학원) 사람들한테 전파 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이런 걸 염두에 둘 수밖에 없잖아. 내가 혼자 사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를테면 대가족이랑 같이 살고 있는 거잖아. 나 혼자 걸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냥 밖에 나가서 밥 먹고, 사람들 만나러 갈 거 같아. 

(반대로) 밖에서 못 누리는 연결감 같은 거를 우리는 이 안에서 느끼기도 하잖아. 그래서 (못나가서 답답한 것과) 상쇄되는 것도 있는 것 같고. 장단이 있는 거 같은데 나는 대가족일 때 얻는 게 더 많은 거 같아. 사람들이 엄청 우울해하는 걸 유튜브 같은 데서 보고 있어. 근데 진짜 조그만한 공동체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큰 힘이 될 거 같거든. 나는 곧 이 공동체를 나가잖아, 그때 내 심리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 엄청 다를 거 같아. 


2. 우리는 왜 연결되기를 욕망하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었을 때 강학원은 공부하러 오시던 모든 선생님들의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근처 거주민인 청년들만 강학원 공간을 생활-공부 공간으로 사용하고, 세미나와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됐습니다. 수업이 온라인으로 바뀌는 데에도 기술적인 문제와 장비의 문제가 있었지만, 저희에게도 ‘거리두기’는 단순히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바뀌는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해서 청년들끼리만 모여서 지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2주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수업은 계속되고, 모여서 밥을 해먹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같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의 다양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저희는 몸으로, 답답함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얘기를 하면서 표정이 어두워지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몸과 공부는 타자를 필요로 합니다.


수정: 일상적으로 하는 접속을 못할 때 답답한 느낌이 든다는 걸 처음 알았던 것 같고. 공간이 텅 비어있는 게 계속 마음이 쓰여. 원래 강의하고 세미나로 꽉 차있던 공간이 비어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휑함. 황폐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해서. 그게 좀 아쉽고. 

사람이 기운을 주고받는다고 하잖아. (세미나를) 세미나원들이랑 모여서 하는 거랑 온라인으로 하는 거랑 기운이 정말 달라. 근데 강의하실 때 그 화면을 뚫고 기운을 전달하시는 선생님도 계시더라고. 뚫고 나오신다! 기운이 뻗어온다! 이런 느낌으로. 근데 보통 세미나에서는 그만큼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좀 느슨해지고, 소리도 괜히 안 들리는 것 같고. 목소리가 딱 안 꽂힌다고 해야 하나. 귀에 안 꽂히고 슬슬슬 지나가는 느낌이 드는 거야. 내 마음으로 안 오고. 접속에 아쉬움들이 좀 있어.

공동 주방에서도 우리(청년들)끼리만 먹고 우리끼리만 밥을 하게 됐잖아. 3년 전에 처음 강학원에 공부하러 왔을 때 같이 밥 먹으면서 다른 중년 샘들이랑 섞이는 과정이 재밌었거든. 너무 들을 얘기도 많고, 할 얘기도 많고. (강학원 식당이) 그런 게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던 것 같아. 그게 이 식당의 큰 장점이고,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다 사라지니까 너무 아쉽고. (올해 처음 강학원에 들어온) 친구들한테도 좀 안타까운 일인 거 같아. 더 열릴 수 있는 기회였을 텐데. 그게 좀 아쉽기도 하고.


자연: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있었으면 그 친구들이 이 생활이나 공부에 더 뛰어들었을 거 같아. 주방이 많이 달라졌죠. (사람들이 없어지니까) 주방이라는 공간이 정말 많은 사람들로 굴러가는 공간이었다는 거를 새삼 알게 된 느낌이야. 지금은 우리가 해서 우리가 먹고 있는데, 그냥 동네 애들끼리 모여서 밥해먹고 좋다~이러는 것 같고. 그 전에는 주방에서 매번 일이 있었던 거 같거든. 사건이 생겼어. 근데 (사람들끼리) 이질감이 없으니까 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그 전에는 밥당번을 해도 모르는 선생님들이랑 하면 재밌잖아. 다르게 공부하는 얘기들도 듣고. 살아온 얘기 해주시기도 하고. 주방이 그전엔 소통 창구라는 느낌이 컸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닌 거 같아. 성격이 많이 달라져버렸어.


호정: 다양성이 떨어지는 느낌은 있는 거 같아. 나도 오랜만에 주방에 다시 왔는데 확실히 다르긴 해. 원래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지금은 다 비슷한 사람이니까 딱히 부딪힐 일도 없고. 트랜스 제너레이션(Trans-Generation)이 다 사라졌어. 섞이는 느낌이 되게 좋았는데 환기도 되고. 


3. ‘겪음’의 태도

생활과 공부를 꾸려가는 데에 필수적인 조건인 ‘연결’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때입니다. 우리는 그런 조건 위에 있습니다.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곳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할(수 있을)까? 결핍의 시선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자는 친구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겪을 것인지,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 편으로는 경계를 짓고 외부를 막아야하는 지금 이때, 우리 안에 있던 타자를 배제하고자 하는 욕망이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경계해야 할 점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자리에 있는 타자들에 공감하고, 연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고, 상황이 바뀌면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그것이 코로나를 겪는 공동체의 태도이지 않을까요.


호정: 이 상황을 결핍의 시선으로만 보게 될 때 제일 무능력해지고 힘들어지는 거 같아. 이 변화는 사실 어쩔 수 없잖아. 물밀 듯이 밀려오는데, 그럴 때 피해자의 위치에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거 같거든. 근데 진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있잖아, 자영업자라든지. 그런 분들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말을 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뭘 당했다는 것보다 뭘 할 수 있는지, 그걸 최대한 생각하는 게 생명의 입장이 아닐까 싶어.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위기잖아, 공동체에 사람이 공부를 하러 안 오는데. 우리만 고이게 되고. 근데 이 공동체에서는 온라인이라는 출구를 열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고, 선생님들은 우리(청년들이) 다 못 먹고 있는 줄 아시고, 주방에 선물을 끊임없이 해주시고. 우리가 물리적으로는 차단을 할 수밖에 없지만 (연결할 수 있는) 더 다양한 방식을 찾으려고 해야 하는 거 같아. (올해 강학원에서 했던) 온라인 북토크 같은 실험도 나는 재밌는 거 같아. 지금은 흥행하지 않더라도. (웃음) 이 광활한 온라인 망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인 거 같아. 그런 실험들을 살펴보면 좋을 거 같긴 해. 이번 비학술적 학술제도 재밌는 거 같고. 

자본주의 위에서는 이미 모두가 결핍자의 시선을 세팅하고 있어서 늘 뭘 더 해야 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이) 그걸 뒤집게 만드는 때인 거 같기도 해. 사람이 그렇게 계속 쭈구렁방탱이로만 살 수는 없잖아. (웃음)

그런 점에서 보면 되게 신기한 때인 거 같은데, 힘든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 사실 어떻게 말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 지금 그런 상황을 맞이하면 너무 힘들 거 같아. 곰샘은 이런 때일수록 그렇게 힘든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신체가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 이번에 나는 그게 부족하다고 느끼긴 했어. 내 생활이 당장 편하고 충족이 다 되니까, 그런 문제를 생각을 안 하는구나. 이런 때 생각을 해야겠다 싶고. 고등학교에 가서(학생들과 코로나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그런 타자들을 보니까 또 느낌이 다르더라고. 얘네 되게 힘들겠다 싶고. 학교 수업을 다 온라인으로 한다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어. 친구도 제대로 못 만들고. 집안에서.


자연: (선생님께서) 이번 상황을 겪을 때, 단순히 우리를 지킨다는 차원보다는 여기가 공부하는 공간이고, 여기서 우리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이 코로나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하셨어. 강학원 출입을 제한했던 것도 이곳이 공부 공간이고, 이 공간이 다시 열리기 위해서는 봉쇄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고. 

어쨌든 여기가 원래는 열린 공간이었잖아. 공부방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 지금 되게 불가피하게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건데,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든 다시 열릴 수 있게 몸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거 같다는 그런 얘기를 해주셨어. 우리를 지키는 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우리가 폐쇄적이게 될 것 같아. 상황이 좋아졌을 때 건강하게 공부를 사람들하고 나눌 수 있게, 그런 방향으로 고민을 해야 할 거 같아. 우리 공부가 어떻게 하면 잘 될 수 있을지. 


소담: 코로나19는 (인간이라면) 이론적으로는 다 걸릴 수 있는 거란 말이야. 우리가 아무 바이러스나 감염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 세포가 코로나에게 열어주는 문이 있기 때문에 걸리는 거라서. 지금은 우리가 바이러스를 잘 차단을 하냐 마냐의 문제로 보고 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게, 올 초에 코로나보다 조금 앞서서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유행했을 때 성공적으로 차단을 했단 말이야. 근데 살처분을 통해서 한 거야. 막냐 안 막냐의 차원을 떠나서, 또 걸리더라고 어떻게 이걸 겪어낼 건지를 생각해야 할 거 같아. 방역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닌데, 막자, 쫓아내자라는 방향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 거지.

지금은 확진자가 또 엄청 늘어나고 있잖아. 그렇다고 여기서 놓아버릴 수는 없잖아. 방역을 성공했냐, 실패했냐라는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건 나를 불안하게만 하는 것 같아. 확진자가 아무리 늘어나더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갈지를 생각해야 하고, 내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 수도 있고. 불안감 휩싸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고. 심지어 걸리더라도, 어떻게 헤쳐나갈 건지, 그 태도가 중요할 것 같아. 걸리고 나서도 내 중심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


4. ‘노멀’과 ‘일상’에 질문하다

공부는 질문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뉴 노멀’을 이야기 하는 시대, 저희도 저희의 ‘노멀’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병이 생길 때 몸이 도드라지게 느껴진다는 것처럼, 코로나는 묻혀있던 저희의 일상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이때 코로나는 비극적인 것만이 아니라 하나의 렌즈가 되어줍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멀리 멀리 갔습니다. 여기 싣지는 않았지만 국가와 국가들의 경계에 사는 사람들, 국가에 기대어 있는 의료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문명과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도드라지지 않았을 이야기들입니다.


한결: 평소에 카페나 식당에 많이 가진 않지만, 사람 만날 때 가거든요. 누군가를 만나는 방식으로써 그런 걸 이용했던 건데, 코로나 이후에 못 가게 되니까 왜 나는 먹고 소비하는 방식으로써만 누구를 만나려 했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들었던 것 같아. 사실 먹고 마시는 거랑 사람 만나는 거는 별개의 일인데, 왜 이게 같이 붙어있지? 그래서 제가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못 만난다고 생각한 게 좀 이상한 거예요.

나는 사람을 어떤 욕망 위에서 만나고 있었기에 그런 장소와 그런 소비 패턴으로 이어지지? 하는 질문이 들었고, 아직 탐구 중인데… 다른 욕망 위에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코로나가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왜 올리버 색스도 보면, 꼭 직접 못 만나더라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또 자주도 아니야, 몇  십년 후에 어쩌다 걸려온 전화일 수도 있고. 레니 이모랑은 편지를 일 년에 다섯 여섯 번 (그렇게 관계를 맺잖아요.) 저는 직접 대면하고 직접 대화를 나누면 밀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근데 꼭 그렇지 않고, 그게 핵심은 아닌 거 같은 거예요. 관계의 깊이나 힘을 만드는 데에.  

전화로도 그런 깊이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이후로는 외부 친구들을 못 만났는데, 왜 나는 전화는 부족하다고 느꼈지? 뭘 원했길래? 그런 생각도 해보고. 연애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 관계에 있어서는 감각적 쾌락이나 정서적 보상 같은 거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았던 것 같고. 그래서 어떤 것을 잡고 가면 외적인 것, 형태나 만남의 횟수가 어떻게 됐든, 관계의 깊이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해요. 코로나가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준 거 같아요.

지금이 고립과 단절의 시대라고 하는데 (올해 강학원에 오면서)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가장 열린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거예요. 너무 역설적인 거야, 이게. 코로나 관계없이, 밖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도 강학원에서 생활을 같이 하면서 만나는 거랑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강학원 생활이 좋고. 좀 더 그럴 수 있었던 게 오히려 외부가 차단 돼서 내가 이 안에서 더 밀도를 만들려고 애를 쓴 것 때문인 것 같았어요. 외부에 샛길이 있었으면 여기서 그렇게 열리려고 하지 않았을 거 같아, 내가.


주희: 코로나가 퍼지면서 내가 밖에 잘 못나가고 내가 내 일상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됐잖아. 나는 코로나가 엄청 우리를 제약한다고 느껴지고, 답답하고, 빨리 이 문제가 풀렸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계속 들었단 말이야. 클럽에 여전히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잖아. 사람들이 욕망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 추구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근데 그게 아니라 내가 왜 계속 그걸 하고 싶어 했지? 그런 걸 생각해보게 되는 거 같아. 내가 꼭 그걸 해야만 하나? 그냥 내가 익숙하게 해오던 걸 좀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달까.


보라: 난 일상이 뭐지? 라는 생각도 드는 거야. 코로나 이전에 연구실에 오면서 나는 일상이 바뀌었단 말이지. 그렇잖아. 그러니까 코로나도 내 생활행동 패턴이나 내 일상이라고 하는 걸 같은 걸 바꾸게 하는 조건들 중 하나인 거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달라진 거라고 하면... 확실히 사람을 좀 덜 만나게 되는 거? 사람을 만날 때 벽 같은 게 생긴 거 같아. 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 이런 걸 떠나서, 서로를 위해서 뭔가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거든. 나 스스로도 의심하게 되고.


주희: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드는 거 같아. 계속 니체 에세이 쓰면서도 생각하는 건데. 살다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이 닥쳐오는데, 그럴 때 내가 기존에 계속 해오던 방식대로 살려고 하면, 이전처럼 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결핍감, 무력감 그런 게 너무 크잖아.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다르게 생성해낼 수 있을까, 예를 들면 관계에 있어서도 예전에는 카페 가서 친구들 만나고 시내 돌아다니고 했다면, 그게 아니라 어떻게 다르게 관계를 맺어볼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해야 내가 이 경험을 다르게 가져갈 수 있을 거 같아. 그게 아니면 계속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고, 그런 마음이면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은 거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분명 코로나 같은 게 또 올 거고,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올 텐데.


보라: 사람들이 자꾸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까지를 기다린다, 참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잖아요.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올리버 색스 책을 읽어보면 현재 상황이나 병 같은 것들에 역사가 있잖아요. 이런 상황이 된 조건들이 있고. 결국에는 이 조건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 상황을 계속 마주하게 될 텐데, 이럴 때일수록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일상이라는 게 뭔지 그걸 좀 더 돌아봐야 되는 것 같아.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결국엔 내가 살아왔던 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요.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어서 옛날 자료들을 보다보면 정말 지금 하는 이야기랑 똑같은 거야. 우리가 이걸 반복하고 있는 거야. 팬데믹에 관련된 예전의 글들, 칼럼들 읽어보면, 진짜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거야. 규모의 차이인 거지. 그때도 똑같이 질문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이상 팬데믹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건데, 마치 이걸 주사 한 방 놓거나 수술하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 자체가 문제다, 이런 글들을 많이 봤었거든. 

지금도 우리가 이걸 언젠간 지나갈 순간, 버티면 되는 순간으로 넘기면 또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동안 해왔던 정상이나 일상이라고 하는 삶의 방식이 맞는지, 한 번씩 돌아볼 수 있는 거고. 이런 거 있잖아. 쇼핑을 못 해, 그래서 미친 듯이 택배를 시켜. 이런 것들이 맞는가? 나는 안 해도 되지만 누군가는 그걸 대신 해야 되잖아요. 내 욕망, 소비하는 패턴은 하나도 바꾸지 않고, 나의 안전만을 유지한다고 이 문제가 과연 사라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인간이 밀집되어서 살면 안 될 것 같다, 이런 생각까지 가거든. 도시라는 것 자체가 전염병을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닌가.)

보라 : 〈전염병의 역사〉인가 그 책 읽어보니까, 물론 그것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야생 지역들에 사람들이 개발을 하러 들어가면서 (인수공통 전염)병을 옮겨오는 경우도 있고. 지금 엄청 빠르게 멀리 이동할 수 있잖아요. 이걸 나한테 물어봐야 되는 거지. 나도 여행이나 이런 걸 포기해야 되는 걸 수도 있잖아. 

예전에는 전염병이 대륙에서 대륙으로 가는 게 쉽지 않았던 게, 배를 타고 몇 개월씩을 가야 돼서, 이미 그 안에서 면역체계가 다 생기고 죽을 사람은 다 죽은 다음에 다른 대륙에 도착했다는 거야. 지금은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갈 수 있잖아. 운송 시스템도 발달이 되어 있고. 그러니 이 팬데믹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지. 우리가 이거(기술) 때문에 얻은 이득들도 있지만, 그걸 누릴 때 반드시 따라오게 되는 것들이 있는 건데. 이걸 분명하게 알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될 거 같아. 근데 이게 전지구적인 차원이잖아. 내가 비행기를 안 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죽음 앞의 인간〉에는 페스트 이야기가 있었잖아, 그것도 거의 전세계적으로 유행했었고. 그때도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던 게 문제였어. 근데 그게 반복되고 있고. 나는 배우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어. 우리가 정말 배우고 있는가. 나한테도 질문하게 되는 거지. 이런 책들을 올해 읽게 된 건데 내가 만약 공부를 안 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으면 나도 이 시기가 괴로웠을 거 같거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지금도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5. 마무리하며

남산강학원에서 공부하는 열 명의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올 한해는 각자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다 다른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시간과 모든 문제가 그렇겠지만요. 저희 남산강학원 청년 열 명에게서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희의 공부와 질문도 진행형입니다. 팬데믹에 비대면, 고립의 시대지만, 어쨌든 삶은 계속 됩니다. 결국, 다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우리 마음을 잘 잡고 가는 것이 중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다른 때보다 힘겨운 때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시도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야기할수록 코로나19는 넓고도 좁은 문제, 간단하고도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좁고 간단하게(저희가 할 수 있는 한으로는 넓고 자세하게), 여기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남산강학원〉은 중구 필동 남산 자락에 있는 공부 공동체입니다. 함께 읽고 쓰고 공동체를 꾸립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갈 길이 정해져 있지도 않습니다. ’저희’라는 것도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다만 각자의 질문-화두를 증식시키고 넓히고 탐구하고자 하며, 늘 배움의 길 위에 서있고자 합니다. 이 공부에 동참하고자 하는 다종다양한 도반들과 함께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