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ation

민들레

〈2020 사이랩 편지 프로젝트: 지역에서 함께 OO한다는 것〉

민들레에서 지역 활동을 시작하며 자기 ‘동네’를 만나게 된 두 명의 청년들이, 각자의 발견을 담은 편지를 썼습니다. 불안정한 삶에 지쳐 있었던 우리가, 2020년 아주 약간이라도 평화를 찾을 수 있었던 이유가 어쩌면 동네 덕분은 아니었을까? 앞으로 점점 이동이 제한되고, 자원을 펑펑 쓸 수 없게 되는 미래가 온다면 해답은 '로컬-지역'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답이 없는 질문들을 던져 보며 2020년의 어떤 풍경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은 이 편지들에, 다음 답장을 해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시작하며 A


요즘 제일 입 밖으로 꺼내기 싫은 말이지만 제일 자주 하게 되는 말, “코로나 때문에”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안부를 묻고 싶어도 잘 지내냐는 말을 하기 어려운 요즘. 그래도 다들 잘 지내죠?


혜민과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된 시점부터 저는 끊임없이 “지역에서 청년으로서 살아가기”를 고민해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느려진 이 세상이 저로 하여금 그 고민을 더 깊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빨리빨리”로 대유되는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와중에, 코로나는 제게 더 멀리 뻗어나가기 힘든 세상을 주었지만 내 주변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빠르게,라기보다 찬찬히,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들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달까요?


소외당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담론을 생각하기에, 이는 결코 우리에게서 멀리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거대 담론으로도 이를 쉬이 설명할 수 없어요. 제가 다양한 활동을 하며 느낀 건,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를 이룰 수 있는 권리’, 즉 성원권1)은 지역에서 자리잡으며 주변을 살피고 환대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거죠. 느려진 세상에서 내 주변을 한번 더 돌아보는 지금, 저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 “때문에”가 아닌 코로나 “덕분에”라는 말은 자칫 잘못하면 오만해 보이지만, 혜민과 저는 그래도 그 “덕분에” 우리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는지, 어떻게 우리가 청년으로서 “지역”에서 이 시기를 살아내가는지를 필담 형식으로 주고받고자 합니다.


하고 싶고 쌓인 이야기들을 찬찬히 풀어나갈 기회는 많을 테니, 이만 줄일게요.


모경.



시작하며 B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19를 완전히 삶에서 쫓아낼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 중에 무엇이 정답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유난히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이 질병이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접근하지 않았다면,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섭취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인류로 전파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부분입니다. 이전에 없었던 접근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 중에, ‘표류기’ ‘여행기’ ‘기행기’의 이름을 달고 있었던 책들이 심심찮게 있었습니다. 그 책들은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미지의 세계로 걸어들어가 신비롭고 흥미로운 모험을 하는 이야기였고, 통념과 질서와 선을 무너뜨리는 혼란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경계를 흐리고 지우고 무너뜨리고 넘나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바깥으로 나가는 일보다, 안을 돌보고 단단해지는 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끊임없이 “진출”하고 “정복”하여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였던 시대는 이제 갔습니다. 멀리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우리들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고, 오히려 경계 안쪽의 친구들, 활동들, 커뮤니티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열심히 지역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앞서 계속 ‘경계’를 이야기했는데요. 지리적 경계나 의사소통의 경계선을 가리킨 것이었지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 긋고 있는 가치관의 경계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되네요. 그것 역시, 이전의 저라면 자꾸 혁파하려 들고 간섭하려 들었겠지만, 지금은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을 취하려 합니다. 인간이든 토지든 숲이든 야생동물이든, 무언가를 개발 혹은 계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시각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배우는, 호된 훈련의 나날들이네요.


다음 편지는 제가 먼저 써 볼게요.


지역 활동에 대한 저 개인의 경험담으로 물꼬를 터 보면 어떨까 해요. 이제 막 시작한 이 이야기들이, 벌써 너무 재미있고 즐겁네요.


부디 끝까지 지치지 않길 바라며,


혜민.



1.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요즈음은 ‘지역’이라는 단어, ‘동네’라는 단어, ‘마을’이라는 단어, ‘로컬’이라는 단어, 내가 머무르는 곳이 포함된 영역을 가리키는 온갖 단어들 사이를 오가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단어들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들―이 단어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뉘앙스로 이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는데, ‘지역’이든 ‘동네’든 ‘마을’이든 ‘로컬’이든, 전혀 ‘서울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 단어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세간에서 저 단어들을 사용할 때는 거의 대부분 서울과는 반대되는 것들을 표현할 때가 아니던가요. (“지역 신문” “동네 잔치” “마을회관” “넥스트 로컬”) 그럼에도 최근 몇 년간, 서울이라는 대도시 안에서 지역성을 어떻게든 추출하려는 시도들이 있어왔습니다. ‘촌村’이 아닌 곳에서 ‘마을’을 찾으려니, 그야말로 잿더미 속에서 멀쩡한 땔감조각을 찾는 일이나 다름없었을 겁니다.


그런 흐름 속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200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아파트 키드로 태어나고 길러진 80년대 후반기~90년대 전반기 출생의 청년들. 70년대에 태어난 선배들이야 무슨무슨 골목길에 대한 향수라도 있다지만, 우리는 마을이라고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저도 마을 같은 것에 딱히 흥미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약간의 오지랖들이 있을 것 같고, 서로 실수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엮일 일도 많을 것 같잖아요. 실제로 지금의 청년 세대는 사회가 내 몸과 내 사고에 개입해 온 과거를 누구나 가지고 있고, 식구나 친족 중 누군가가 애정이라는 핑계로 간섭하는 것들에 상처받은 적도 많으니, 마을 주민들의 고정관념, 시선, 간섭, 오지랖을 겪을 것이 벌써부터 지겨운 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공동체라는 단어를 멀리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마음에도 공감합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이런 약간의 오지랖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벽, 천장, 모니터라는 세 개의 평면으로 닫혀 있는 세계에 노크를 하며 생존을 확인해 주고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해 주는 오지랖이, 갈수록 절실해지지 않을까 감히 예상해봅니다. 이 시절을 미리 예측하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저는 올 한 해 "동네에서 청년들과 청년정책 새로짜자"라는 슬로건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에 저의 모든 마음을 태워 열중했습니다.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는 거리에서, 평소에 아무나와 나누지는 못하는 청년 정책 이야기를 하고, 사회의 이슈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게끔 하는 청년 정책 거버넌스 사업이었습니다. 저는 "성북청년공론장"이라고 불리는 이 활동을 작년에 참여자로서 겪으면서 진짜 '동네'에 대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리베카 솔닛이 쓴 《멀고도 가까운》을 요새 읽고 있는데, 이런 문장이 나오더군요.


“가까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뉴욕에서 몇 년을 지낸 후 뉴멕시코의 시골로 이사한 조지아 오키프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인사말을 덧붙였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감정은 그 자체의 거리를 가진다. 애정은 근처에 가까이 있는 것, 자아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침대 옆에 함께 누운 사람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을 수도 있고, 세상 반대편에 있는 낯선 이들의 삶에 깊이 마음을 둘 수도 있다.


성북청년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안전하고 평등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삶과 철학을 주제로 하는 대화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감동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청년들은 그러니까, 나와 정신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이에 있을 때, 그것을 동네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요. 실제 거주 여부나 주민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말입니다. 늦은 퇴근과 이른 출근 사이에 잠깐 몸을 누이고 오는 곳을 House라고 여길 수는 있어도 Home이라고 느끼기는 어렵듯이, 어디에 마음을 주는지가 어디를 동네라고 인식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성북청년공론장에 멤버십으로 가입하면, 자신의 주 활동 영역이 어느 법정동에 속하는지에 따라 1주일에 한 번 모이는 동별 모임(성북구의 20개 동을 가까운 것끼리 권역으로 묶어, 6개의 권역별 모임이 있었습니다.)으로 초대되는데, 이 권역별 모임에서 자기 동네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알게 됩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듣는 후기를 통해 집 근처 식당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저 스쳐 지나갔던 길에 있었던 공간이, 다음번 모임이 열리는 장소가 됩니다. 서서히, 새로운 장소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나의 '동네' 안으로 편입됩니다. 도시 안의 '동네'는 그래서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심정적-정신적 공간으로도 존재합니다. 나의 가치관에 응답하지 않는 장소는, 나의 동네가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올해를 보내는 것은 정말 남다른 기분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벽과 천장과 모니터만 존재하는 육 평짜리 방을 벗어나, 붐비는 버스를 타지 않고도,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고성을 지르는 사람과 만나지 않고도, 걸어서, 따릉이를 타고, 킥보드를 타고 와서 만났습니다. 한두 번 만나 심리적 유대가 쌓이고 나니, 온라인 모임으로 옮겨 가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모임을 하는 동안에는, 육 평짜리 방도 그렇게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의 '지역'은, '동네'는, '마을'은, '로컬'은 그렇게 새로운 가치를 얻었습니다. 앞으로도 청년들은 아마 이동의 불편을 겪을 것이고, 대규모의 모임에 참여하기는 어렵겠지만, 아주 적은 규모의 동네 친구들과는 '멀고도 가까운' 사이로, 슬리퍼를 끌고 가서 만나기도 하고 모니터를 켜서 만나기도 하는 그런 사이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의 사이도 이런 것이겠죠, 모경. 지금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 않지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모경이 어떻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지가 잘 보입니다. 모경의 예상과 거의 틀림없이 맞아떨어질 문장으로 가득찬 편지를 썼다는 사실이 뿌듯하네요. 만약 의외의 문장을 마주했다면, 그 발견에 대해 꼭 답장해 주시길.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혜민.

 

 

2. 길을 잃으며

 

혜민의 마지막 문장들을 읽으며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고개를 평소에도 잘 끄덕이며 남이 말할 때 동조를 열심히 하는 편인데, 당신의 편지는 오죽했겠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끄덕였냐 물으신다면, 끄트머리에 쓴 말들이 우리가 정말 통하고 있었구나, 해서요. 그리고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지금 이 시기를 지내는 우리가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너무 잘 표현한 것 같아서요.

 

혜민처럼 저 또한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름 시골에서 자라온 저의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웃과 인사하고, 가까이 사는 동료와 친구들을 불러내어 맥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는 그런 동네에서 말이죠. 지역, 로컬, 그리고 동네라는 단어와 친해진 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도 이것들은 제 삶에서 너무나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요소들로 이루어진 경계 안의 사람들과 ‘공부’를 했다는 것 또한 올해의 특별한 기억이 되겠네요.

 

누군가와 함께 글을 읽고 공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이라고도 하겠지만, 제게 공부는 같이 해야만 ‘공부하고자 하는 담론’이 보다 더 확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멀리 있는 아무나가 아니라, 곁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함께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의 동료와 친구라면 그 시너지는 더 커지겠죠. 확대된 담론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보기 위해 가끔씩은 길을 잃어줘야 한다는 것을 함께 공부하며 깨달았습니다.

 

작년에는 민들레에서 《사피엔스》 《사람, 장소, 환대》를, 그리고 올 한해 성북청년시민회와 《도시를 걷는 여자들》 《길 잃기 안내서》를 동네 친구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책마다 모두 다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모임이었어요.) 세상에 넘치는 수많은 책들 중에 굳이 이 책들을 고른 이유는, 이 책들을 하나의 줄로 꿸 수 있는 키워드가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민들레가 항상 고민해왔듯, 사람과 어떻게 따뜻하게 연결될 수 있을지 사유하는 맥락에서요.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픽셀화된 얼굴보다는 체온을 느끼고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만남이 좋았던 저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글방 친구들과 이 주에 한번씩 만나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런 시국에 대면 만남이 가능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물리적 거리가 가까웠던 게 제일 컸습니다. 몇 번 만나고 나니 ‘우리’만의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이미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편안한 상대와는 스크린 너머에서도 그 분위기가 느껴졌죠. 혜민이 이야기한, ‘감정적-심정적-정신적’ 공간인 ‘동네’(혹은 지역)는 이런 의미에서 지금 더 가시화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의 거시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사유하기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하지만, 지역에서 동료들과 ‘함께’ 공부를 할 때 오히려 좁은 시선의 장막이 걷히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열립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의 결핍을 배워가며 ‘서로를 살리는’ 곳이 바로 지역이지요. 긴밀하게, 밀도 높게 연결될 수 있는 곳에서 저는 계속 소중한 동료를 더 많이 찾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서 ‘정해진 길을 가야지’보다는 길을 잃어버리며 느닷없이 찾아오는 인연들을 마주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제가 민들레에 느닷없이 찾아왔을 때 혜민이 따뜻하게 환대해주었듯이, 우리를 찾아올 더 많은 소중한 동료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일요일 새벽, 정말 길을 잃어버린 모경 드림.



3. 공기를 바꾸는 사람들

지역에서 친구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거나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 쭉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지역에 기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볼까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민들레의 경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2010년 즈음의 민들레는,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더 넓은 세상을 탐색하고 싶어하는 가을겨울 즈음이 되면 길잡이 선생님들은 자연스럽게 성산동 주변의 자전거포, 마을방송 라디오국, 출판사, 찻집, 식당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턴십이나 탐방을 준비하셨죠. 행사 다과를 준비할 때, 발표 자료를 만들 때, 청소년들이 만든 소모임의 영화제를 열 때에도 동네의 누군가와 함께했습니다. 그러니 성북구로 이사를 한다는 것이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지요. 때는 2015년이었는데, 저는 그때 사이랩Between LAB의 초창기 멤버로서 민들레에 거의 매일 얼굴도장을 찍으러 다니고 있었기에 민들레 식구들이 맞닥뜨린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상세하게 기억합니다. 당장 청소년들의 점심식사를 어떤 찬방과 함께 준비해야 할지부터가 난관이었고, 몸 활동은 어느 공간을 빌려서 해야 하는지, 근처에 도서관은 어디에 있는지 등을 찾느라 모두 함께 분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민들레의 아이, 어른, 고양이 모두가 새 동네에 적응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그 해가, 저로 하여금 마을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하게 해 준 또 하나의 계기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인가, 그게 이번 편지에 담을 저의 고민입니다. 지역의 덕을 앞으로도 보면서 살고 싶은 한 명의 청년으로서, 나는 어떠한 마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것인가, 그것이 지난 5년간 제가 지역 활동을 하며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질문입니다.

모경도, 처음 민들레에 와서 '월간동네교육' 모임에 참여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월에 한 번 있는 모임이지만 어느 누구도 피곤한 기색을 하지 않는 그 신기한 모임에서, 민들레의 경옥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이들에게 집이라는 제1의 장소, 학교라는 제2의 장소가 있지만, 거기에서 충족되지 않는 어떠한 관계나 배움이 있기 때문에 동네라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 라고요. 후에 찾아보니, 미국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1989년 출간작 《제3의 장소The Great Good Place》2) 가 이 용어를 제일 처음 제시했더라고요. 청소년들에게 '비공식적 공공생활'을 할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이 관점으로, 민들레의 모두는 열과 성을 다해 성북구에서 지역연계 교육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하나가 '성북청년/청소년마을학교 라운드스쿨'이겠죠. 청년들이 지역에 있는 문화 자원과 친해진 후, 청소년들을 만나 팀 활동을 하며 지역과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이 프로그램에, 저는 운이 좋게도 2년 연속 운영진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솔직히 어떻게 해나가야 하나 고민도 정말 많이 했고, 아쉬운 점도 너무 많이 남지만, 라운드스쿨이 저에게 남겨준 것이 있다면 지역의 다른 동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라운드스쿨을 통해 저는 지역을 돌아보고, 지역의 공기를 바꾸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의 다양한 활동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기업으로, 협동조합으로, 느슨한 연대체로 뭉쳐 지역의 문화 생태계를 바꾸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가치를 소리 높여 주장하는 대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를 바꾸듯, 주변을 둘러싼 문화를 바꾸어가며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민들레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저는 청년들도 내일을 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각자의 집이 바뀌고, 학교/회사가 바뀌는 것에 이어서, 동네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이 더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그런 동네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눈으로 귀로 열심히 담은 것들을 가지고, 더욱 적극적으로 존재하고 참여하고 싸워 나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중입니다. 우리가 지역 주민으로 맡은 책임이, 몇 천원의 주민세를 성실히 내는 것, 그것보다는 아주 약간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까요.

모경에게도, 우리가 동네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다만 한두 가지라도 떠오르는지 궁금합니다.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중 단 하나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있겠지요? 만약 우리가 아직 그만큼 품이 넓지 못하다 해도, 서로가 서로의 동네가 되어줄 수는 있지 않겠어요.

마지막 편지를 앞두고,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꾸어나가는 일에 대해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서서히 선명해지는 것들을 붙잡아보려 애쓰면서, 혜민.


4. 느려진 세상 속에서

혜민. '동네'에서 항상 무언가를 해보려 도모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이네요. 이제껏 혜민이 '민들레'라는 지역 장소에서 해 온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면, 저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저만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의 편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가 1년 넘게 민들레가 있는 성북에 살지 않고, 1시간이 넘는 출퇴근 시간을 감당할 때에는 지역이 주는 안락함, 내 옆의 동료와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더 도모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그리고 이 지역에서 뭔가를 '함께'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성북으로의 이주(?)를 결정했죠.

그러나 마을에서 살아가기,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마냥 가능해보이진 않습니다. 특히 청년 세대는 더 그렇고요. 공간을 이동한다거나 그 지역을 재구성한다고 해서 '마을'이 형성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성북에 이주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리적 거리는 멀었지만 그간 쌓아온 친구들과 동료들의 따뜻한 환대로부터 기인한 끈끈한 관계망이 있어서였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니 그 끈끈함은 배가 되었지요. 마을의 구성원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 즉 '서로를 환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기본에 깔려 있어야 '동네에서 살아간다'는 말이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부분 아닐까요. 그 어떤 때보다 청년 세대가 당면해 있는 마음 건강을 비롯한 심각한 문제들을, 저는 '로컬'에서 해결의 시작점을 찾고 싶습니다. 나의 살갗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요즘 같은 때에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들이지만 바로 이렇게 체온을 나눌 수 있는 동료와 친구들과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이 바로 로컬이라는 겁니다. 혜민이 이야기한 '살고 싶어지는' 동네를 만드는 것은, 거주한다는 '살다'의 의미에서 숨을 들이마시며 생존한다는 '살다'의 의미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혜민이, '민들레에서는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했죠. 그에 보태어 저는 민들레가 지향하는 또 다른 지점, '서로를 살린다'는 마음을 항상 강조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일을 기대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살리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리고 서로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해준다면 동네, 공동체는 그로서 커다란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느려진 세상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으로서 필요로 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마 혜민도 제가 생각한 키워드들과 같은 걸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지 않을까요.

지난 2년 동안 민들레에서 일하며, '동네를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혜민이 이야기한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 등의 활동들을 함께 하면서도 말이에요. 아직도 '동네를 위한다'는 게 무엇일지 제 머릿속의 개념은 흐릿하지만, 그리고 내가 청년 주체로서 지역에서 어떤 걸 해야 할지 늘 고민이 많지만 결국 동네를 위한다는 건 사람을 위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율라 비스는 《면역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우리는 서로의 환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살갗을 맞대며 체온을 나누는 환경을 서로가 조성하기에 우리는 이 끈끈한 연결망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합니다.

“정원의 은유를 우리의 사회적 몸으로까지 확장하면, 우리는 자신을 정원 속의 정원으로 상상할 수 있다. 이때 바깥쪽 정원은 에덴이 아니고, 안락한 장미 정원도 아니다. 그 정원은 몸이라는 안쪽 정원, 그러니까 우리가 ‘좋고’ ‘나쁜’ 균류와 바이러스와 세균을 모두 품고 있는 곳 못지않게 이상하고 다양한 곳이다. 그 정원은 경계가 없고, 잘 손질되지도 않았으며, 열매와 가시를 모두 맺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야생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혹은 공동체라는 말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회적 몸을 무엇으로 여기기로 선택하든,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다.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다. 우리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다.”

혜민. 편지를 마무리하려니 아쉽네요. 사실 그간 이런 글을 써 보지 않아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 혜민이 준 편지들, 특히 마지막에 제게 나지막히 건네는 인사말들이 저의 새벽을 따뜻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말들이 글감이 되어 이렇게 ‘글'의 꼴을 갖추게 되었어요. 

느려진 세상 속에서, 그리고 살을 맞댈 수 없게 되어 버린 환경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고 다른 방식으로라도 닿을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우정은 이런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불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과 저는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이니, 이렇게 스크린으로 만나도 당신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이런 순간들이 저에겐 불빛 같은 시간이었거든요.

사람을 위한 마음을, 우린 항상 잊지 말기로 해요.

모경.






1)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 출간된 1989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제1의 장소인 가정과 제2의 장소인 직장 외에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교류하는 데 필요한 장소, 즉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제3의 장소가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시민 참여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이들의 교육 공동체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랑방이며, 청년/청소년 교육 활동을 실천하고, 매체를 통한 교육 운동을 펼칩니다. 90년대 말, 민들레출판사가 《학교를 넘어서》와 격월간 〈민들레〉를 펴낸 이후, 책들을 보고 출판사를 찾아온 청소년들에 의해 자발적인 학교 밖 학습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2006년부터는 1년의 교육목표를 세우고 함께 배우는 틈새 교육 과정을 운영해왔고, 청년들이 스스로 진로교육을 만들어가는 청년길찾기연구소 ‘사이랩’도 2015년 개소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