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ation

들불

〈랜선 허그는 정말 따뜻할까?〉

코로나로 인해 들불의 독서모임을 전부 온라인의 형태로 전환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처럼 직접적인 부대낌이 없어도 서로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인데요. 저는 이것을 코로나 시국이 낳은 또 하나의 ‘연대’로 인식하고, ‘우리는 디지털을 통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프리허그와 랜선허그의 비교로 설명해보았습니다. 더불어 깊은 절망이 만든 ‘우리’라는 개념의 공고함을 증언하였습니다.

태초1)에 프리허그가 있었다. 

낯선 행인과 포옹을 하는 프리허그 운동은 대한민국에서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았다. 사람이 붐비는 장소라면 언제나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프리허그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 서로의 체온을 통해 정을 나누던 이 캠페인은 ‘포옹’을 하나의 언어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가 세상을 마비시켰다. 모든 것이 전염병의 한 가운데 우뚝 멈춰섰다. 우리의 세계는 이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보다 옷깃만 스쳐도 전염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 되었다. 비극적인 나날이 이어졌다. 종교, 노동, 돌봄, 의료, 민주주의 같은, 성장과 효율이라는 단어 아래 수장되어 있던 모든 문제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갑작스럽지만 실은 하나도 갑작스럽지 않은 이 논의들2)을 우리는 허겁지겁 읽어나갔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곁에는 코로나19와 함께, 해결되지 않은 어려움들이 있다. 

들불 역시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여성 동료들은 들불의 구심점이었고, 그들과의 만남은 들불을 운영하는 내게 힘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과 침 튀기며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일도, 책 얘기를 하다가 붉어진 서로의 눈시울을 마주하는 일도, 맥주 잔을 부딪히며 여자로 사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한탄하는 뒷풀이도 꿈처럼 멀어졌다. 이제 사람들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여성들은 2020년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결국 또 고립된 섬으로 존재하게 되는 걸까? 많은 것이 아득한 물음표로 남았다.

그 중 내 머릿 속에서 가장 오래 맴돌았던 질문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와 같은 연결감을 느낄 수 있을까?’ 였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 묻어나는 연대의 윤곽을, 우리는 모니터 너머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섣불리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만 하느라 운영을 지체할 순 없었다. 여러 질문들을 집어치운 채, 들불은 다짜고짜 모든 독서모임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모든 다짜고짜들이 그렇듯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렇게 2020년 12월의 오늘이 되었다. 들불의 2020년 운영 내역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20년 1월 이후)

온라인 모임 횟수: 총 24회

남은 온라인 모임 횟수: 2회

온라인 모임 참여 인원: 92명


위 운영 내역을 러프하게 분석하자면, 모임은 한 달에 두 번꼴로 운영됐고, 모임당 약 4명 정도가 참여했다. 오프라인 모임보다 운영 횟수는 늘었지만, 참여 인원은 크게 줄었다. 운영자의 입장에서만 보면 참담한 실적이다. 하지만 나는 2020년의 온라인 독서모임 경험을 성공의 경험으로 자부한다. 온라인 모임을 통해 나는 17년부터 운영해 온 들불의 그 어떤 모임보다 진하고 깊이 있는 연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연결감과 연대 의식을 위 운영내역처럼 숫자로 정리해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20년 1월 이후 진행된 온라인 모임에서)

함께 한숨 쉰 횟수: 122회

함께 화낸 횟수: 1038회

함께 운 횟수: 18회

함께 웃은 횟수: 셀 수 없이 많이

.

.



(물론 위 내역은 임의로 작성된 것이다. 감정들을 완벽하게 분절된 개별 단위로 측정할 수 없음은 당연하니까)


K-방역의 힘이 코로나19를 완벽하게 무찌를 것으로 전망했던 전염병 시대 초기, 사람들은 모니터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놓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인원도 적었다. 카메라를 켜고 참여해달라는 사전 안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얼굴을 내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3),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거나 말 없이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었으며, 책에 대한 짧은 감상 이외에 어떠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질문은 주로 호스트에게서 참여자에게로만 전달됐고, 참여자는 그저 ‘답하는 자’로만 존재했다. 이야기는 순환하지 않았고 어느 시점에 완벽하게 고여버렸다. 책 이야기는 잠시뿐, 저마다의 이야기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오프라인 모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아마 여기에는 온라인 독서모임이라는 방식의 어색함이나 합의된 규칙의 부재도 한 몫 했을테고, 온라인의 특성상 만남을 위해 들이는 품이 적고(만나는 장소까지의 이동과 그에 따른 비용 등의 절차가 생략되어 있으므로), 오프라인 모임에 비해 자유도가 높으며(완벽하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갖춰지므로), 모니터 밖에는 엄연히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지만, 그 모습은 화면 속 밀도 높은 픽셀의 형태로만 구현되므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의 농도가 옅어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코시국 초반, 비대면 모임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이는 신뢰나 정서적 안도감, 안전감, 소속감 같이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온건한 연결고리들이 신체 정보나 신체 언어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서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우리 곁에 생각보다 오래 머무를 것임을 직감하게 된 시점부터 참여자들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이들도 나처럼 ‘당분간(어쩌면 꽤 오래) 비슷한 처지의 여성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오직 온라인 뿐’이라는 단정적인 결론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동일한 비극에 올라 탄 사람들은 이제 머뭇거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마이크나 인터넷 상태가 좋지 않을 땐, 이야기의 소리가 줄어들기도 커지기도 했고 지직거리면서 끊어지기도 했다. 의도치 않은 이러한 효과들은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에도 서로와 연결되기를 갈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극적인 장치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이야기 중간중간마다 마땅히 삽입되어야 할 리액션들이 시차를 두고 나타났다. 한숨과 탄식, 찡그린 표정과 화사하게 구부러진 눈 같은 것들이 조금 엉성한 모습으로 짧게 스쳐갔다. 화면과 화면으로 리액션이 공유되자, 사람들은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말하게 되었다. 힘이 실린 말들이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와 우리의 귀에 꽂힐 때, 우리는 본격적으로 서로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몸들이 카메라로 바짝 기울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싶을 땐 어정쩡하게 카메라 앞으로 손을 뻗어보기도 했다. 훌쩍이는 사람이 있을 땐 카메라 앞에 휴지를 대며 닦아주는 시늉을 하기도 했고, 다같이 화내는 상황에서는 서로에게 들릴 수 있게끔 책상을 세게 쾅쾅 내리쳤다. 누군가 힘든 얘기를 꺼내놓으면, 진심으로 경청함과 동시에 채팅창에 ‘랜선 허그를 보낸다’고 적었다.

우리는 각자의 장소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완벽하게 사적인 공간에서 타인에게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각자의 삶의 고유한 색채가 화면 안팎으로 스며들었다. 개인적인 공간에 저마다의 색깔들이 아름답게  뒤섞였다.

이는 정말이지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지방이나 타국에 있어도, 여전히 이들을 만날 수 있음에 이른 안도를 하게 됐다. 내가 나만의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음을, 그리하여 연결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됐다. 절망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여성들은 그 자리에 있음을 화면 너머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독하게 외롭고 힘든 날에도 정해진 시간에 모니터 앞에 앉으면 이들이 내 곁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감각들로 서로를 느낄 수 있었고, 안심할 수 있었다. 

나는 문득, 이러한 온라인 모임의 경험들에서 프리허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언젠가 모임에서 언급됐던 ‘랜선 허그’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 동안은 인터넷 친구를 위로하고 싶을 때, 가볍게 던지는 말로 쓰였던 단어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단어가 전하는 뉘앙스는 완전히 달라졌다. 

‘랜선 허그’는 온라인 시대의 연결과 연대를 설명하는 하나의 시대적 언어가 되었다. 두 팔을 벌리고 가슴과 배를 맞댄 상태에서 상대의 등을 끌어안는 실제적인 신체 접촉이 없지만 그 어떤 접촉보다도 강렬하게 전해지는 따스한 접속의 힘을 담은 연대의 또 다른 정의가 된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줌을 통해 랜선 허그를 한다. 어정쩡하고 어색하고 비극적인 이 시기를 실감하게 하는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연결을 원하기 때문에 랜선으로나마 진심 어린 포옹을 시도한다. 온라인 모임은 단순해보이지만 꽤 복잡한 얼싸안기의 방식이다. 온라인 모임은 언제나 그렇듯이 결국은 해내고야 마는 여성들의 도전이자 나 자신과 서로를 살리기 위해 화면으로라도 만나야했던 여성들의 노력이며 끝끝내 서로를 붙잡고 일어나기 위해 건네는 뜨거운 동아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는다.4)






1) ‘프리허그 캠페인’은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며, 한국에서는 2006년, 후안 만의 UCC를 통해 확산되었으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태초부터 있던 것은 아니다.

2) 가령 ‘돌봄’을 둘러싼 여러 논의들은 돌봄이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던 때부터 존재하였으므로 이는 갑작스럽게 느껴질 순 있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하게 된 문제는 아니다.

3) 최근 화상 채팅과 관련한 문제들을 ‘계급’을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안다. 이 글의 논지와는 다소 결이 다른 문제로, 이번 글에서 이 논의는 제외하기로 한다.

4) 온라인 모임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대가 종료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위 글은 ‘비대면’이라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 속에서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이 시기를 이겨내고자 노력했던 하나의 시도일 뿐이며, 본 저자는 각자의 어려움으로 인해 모니터 앞에 앉을 수 없는 수많은 여성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들불〉은 여성 독서 커뮤니티입니다. 함께 책을 읽고, 서로가 공유하게 된 문제의식들과 고민들을 활동으로 연결합니다. 활동의 스펙트럼은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여자들의 돈타령을 권장하고 주도하는 ‘Don't be afraid(돈비프)’와 여자들의 완벽주의 타파를 위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Brave new world(브뉴월)’ 을 진행하였습니다. 2021년에는 실패를 말하는 여자들의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합니다.